낯선 도시의 플랫폼 낯섦이 주는 되려 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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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_쿠차] 천년을 뛰어넘은 옛 흔적과의 조우


여행 일기를 뒤적여보니 “8월 1일, 이국 땅에서 8월의 첫 날을 열다”라고 쓰여 있다. 여행 막바지였기 때문일까, 일기 곳곳에 아쉬움과 설레임이 함께 묻어난다.
여름의 무르익음을 온 몸으로 느껴야 하는 이번 여행 일정에서 가장 고역이었던 것은 바로 ‘차 타고 이동’ 이었다. 그 중에서도 민풍을 떠나 사막공로를 거쳐 쿠차까지 가는 길은 장장 12시간의 사막 종단 대장정이었다.

초원을 지나 사막길의 시작
사막으로 접어들기 전, 길의 시작은 영화 같은 풍경이었다. 소, 말, 양이 초원에서 떼로 풀을 뜯고 있었으며 가축을 몰고 가는 여인네도 어슬렁거리듯 천천히 몰아간다. 한가롭고 평화로운 시간, 마침 안개까지 낀 초원은 한 점의 그림과도 같았다.
그것도 잠시, 달린지 채 20분이 되지 않아 누런 사막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잘 닦여진 아스팔트가 누런 언덕들 사이로 쭉 뻗어 있다.
엽서 속에 나오는 황금물결의 장관에 넋을 잃자마자 도로 근처에 전복되어 있는 커다란 트럭 2대를 발견했다. 트럭에 실려 있던 쌀가마니가 밖으로 나와 흩어져 있다. 전날 밤에 불었다던 모래폭풍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상 외의 풍경에 일행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변하지 않는 사막의 풍경. 도로 양쪽에는 모래를 막기 위한 방풍초가 마름모꼴 모양으로 낮게 자라고 있었다. 중간에 내려 사진을 찍던 일행은 사구를 넘다가 끝이 안보여 돌아오기도 했다.
분명 제일 높은 사구였는데 올라가 보니 끝이 아니었다. 다른 일행이 손톱만한 점으로 보였다. 막막한 우주에 떨어진 먹먹한 기분이 되었다. 모래 바람이 얼굴에 부딪혀 손으로 쓸어내리니 서걱거리는 모래가 가득 묻어 나왔다.
출발한지 3시간만에 사막 가운데 위치한 주유소에 도착했다. 3시간동안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고, 파는 물이 있었고, 배를 채워줄 식당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사막의 모래 속으로. 아이스크림 광고에 나오는 젊은이들처럼 한층 들떠 누런 열기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4시간쯤 달리자 조금씩 쓰러진 호양목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후 4시 30분, 중국 내륙에서 가장 긴 타림강의 타림대교를 건넜다. 타림강은 호탄강과 만나 로프노르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젖줄이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호양보호림’ 앞. 1992년 강택민의 방문이 있었고, 이를 기념하는 1,600년 된 호양목이 기념수로 서 있었다.

사막의 끝, 물의 소중함
출발한지 9시간만에 사막 공로(公路)의 끝, 기념비가 서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 곳은 길의 끝이 아닌 길의 시작이었다. 99년 완공된 사막공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사막 길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그 다음은 쉬웠다. 다시 3시간을 달려 우리는 어둠이 내린 오아시스 도시 쿠차로 들어섰다. 꼬박 12시간을 달렸던 셈이다.
숙소에서 시커먼 얼굴과 손을 닦아 냈다. 사막 남쪽 도시와 달리 물이 깨끗하고 시원했다. 물이 좋으니 차 맛도 덩달아 좋아졌다. 쿠차에 볼거리가 많다기에 내일을 기약했다.

쿠처에서의 하루는 무척 짧았다. 그 동안의 일정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비중을 둬 비교적 여유로웠다면, 이 날 하루만큼은 ‘관광여행’이었다.
첫 번째로 들른 곳은 천불동이었다. 불교를 들여와 부흥시켰다는 구마라 승(kumarajiva)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동상 왼편으로 바위산 곳곳에 점점이 구멍이 뚫려 있다. 노란색 계단이 위태롭게 얽혀 있고 동굴 입구마다 나무문에 자물쇠로 채워져 있다.
8개의 동굴을 둘러보는 동안 일행의 입에선 한숨만 흘러 나왔다. 소중한 문화유산이 모두 훼손돼 있었던 것이었다. 벽화는 대부분 긁히고 뭉게졌고, 불상과 사리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슬람교도의 소행이라 한다.


‘관광여행’으로 짧기만 했던 하루
훼손된 동굴을 둘러보며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분노하던 일행은 조선족으로 알려진 한낙연 씨가 기거하며 연구했다는 10번 동굴을 보게 되었다. 그가 남긴 글씨가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의 초상화로 보이는 그림이 세워져 있다. 중국의 피카소라 불린다는 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졌다.
관리인의 ‘감시’를 받으며 동굴을 둘러보고 발길을 옮긴 곳은 봉화대, Kizigaha Signal Tower였다.
한나라때의 군사시설로, 낮에는 불, 밤에는 연기를 피워올려 통신을 했다는데 지금은 다 바스러져 가는 흙더미에 불과해 보였다. 허허벌판에 놓인 봉화대는 세월이 깎아먹은 듯, 원래 16m의 높이에서 점점 낮아져 지금은 약 13.5m의 높이라 한다. 2000년의 역사가 깃들어있지만 너무 초라한 모습으로 방치되고 있어 안타깝게도 느껴졌다가, 한편으론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각되기도 했다.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일행은 스바쉬 불사 유적지로 마지막 일정을 재촉했다. 위나라 시절에 지어진 절이었다고 하는데 역시 남아 있는 것은 허물어져가는 흙더미. 먼지가 끼어 있는 듯 불투명한 풍경의 그 곳은 흔적만으로도 엄청난 규모였음을 짐작케했다.

삶은 어디에도 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우루무치로 향하며, 온통 황토색이었던 쿠차의 기억은 희미해져 갔다. 몇천년을 뛰어넘어 옛 흔적들과 마주하고 있으려니 현기증이 났다.
초라하게 보이는 유적들이었지만,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었고, “네가 서 있는 그 땅에 바로 어제를 살다간 우리가 있었다”고 누군가 속삭이는 듯 했다.
언제나 그렇듯, 여행 시작의 설레임은 “특별하지만 그리 다르진 않구나”하는 안도감으로 변해간다. 이번에도 그랬다. 소수민족들의 생활을 접하고, 눈·코·입 생김새 다른 사람들과 부대꼈던 열흘의 시간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람은 어디가든 사람이고, 삶은 어떻든 삶이라고. 실크로드 도시에서 느끼려 했던 옛적의 화려한 기운보다 더 값진걸 얻은 셈이었다. 


2002.7 - 대학주보

by Dona | 2007/05/09 00:07 | : : 55리터 백팩 | 트랙백 | 덧글(0)
[중국_타클라마칸, 호탄, 민풍] 고즈넉한 오아시스 도시


카스를 떠나 호탄으로 향하던 날은, 여행을 시작한지 5일째 되는 날이었다. 어느새 후덥지근한 바람과 쨍쨍한 햇빛에 익숙해졌고, 먼지가 많이 섞인 바람에도 콜록이지 않게 되었다.
하루종일 차로 달려 호탄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지만, 도요타 흰색 봉고를 타고 썬글라스를 쓴 이방인으로 그들의 삶에 끼어들지 않게 되어 다행이었다. 여전히 ‘낯선이’로 스쳐지나가겠지만, 차창 밖으로 게으르게나마 사람과 자연을 관찰하고 지켜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태어나서 처음본 지평선
카스를 떠나 2시간 가량 지나자 눈앞에 지평선이 보였다. 우리를 둘러싼 사방이 사막이었고 눈에 보이는 유일한 물체는 위태롭게 박혀 있는 나무로 된 전봇대였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전봇대 행렬을 바라보며 황량한 사막 어딘가를 밝혀줄 ‘불빛’이 있다는데 안도했다.
낙타를 타고 누런 모래사구를 넘는 모습을 상상했던 일행에게 호탄으로 가는 사막의 길은 낯설고 어색하기까지 했다.
사막은 모래가 아닌 작은 돌멩이로 되어 있었고 그 사이로 나 있는 일차선 도로는 지평선까지 닿아 있었다. 사방이 산과 건물로 막혀 있는 한국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한 광활한 지평선이었다.

사막 곳곳의 모습들
5시간 이상 같은 풍경을 바라봐야 했던 일행들에게 간혹 스치는 작은 오아시스 마을들은 경외심으로 다가왔다. 사막 한가운데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 안타깝기까지 했는데, 개간을 하는 모습과 평화롭게 손 흔드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 나름의 생활이 있음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마을을 스치는 것도 잠시, 대부분의 시간은 모래폭풍의 소용돌이를 바라보거나,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의 흔적을 보며 사막의 황량함을 체감해야 했다. 간혹 사람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회오리바람이 도로를 침범해 길을 막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일일이 손으로 모래를 제거하는 사람들이었다.

백옥강은 휘돌아 흐르고
호탄의 밤은 서늘하고 활기찼다. 맥주나 먹을 것을 늘어놓고 파는 야시장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커다란 광장 옆에는 구운 옥수수나 손으로 직접 깐 호두 따위를 팔고 있었으며, 아이들은 끼리끼리 모여 뛰어 놀았다. 높은 건물 하나 없는 소박한 도시는 제대로 된 불빛 하나 없이 어둡게 저물고 있었다.
이튿날 찾아간 백옥강은 호탄을 휘감고 흐르는 두 개의 강 중 동쪽에 있는 강이다. 큰 다리와 두 줄기로 흐르는 회색빛 강물. 강바닥은 온통 둥글고 매끄러운 돌뿐이었다. 열댓명의 사람들이 허리를 숙이고 물속을 뒤적이며 옥을 찾는 모습이 보였다.
시종일관 일행을 따라 다니며 원석을 사라고 졸랐던 한 남자의 말을 빌면 강에 나온 사람들 모두 강에서 옥을 주워 생계를 꾸려 나가며, 잘 벌때는 하루에 200∼300元(3만2,000원∼4만8,000원)을 번다고 했다. 옥장수들의 등쌀에 우리는 사막의 젖줄인 오아시스는 제대로 감상하지도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현대식 상설시장…낙후된 박물관
강에서 나온 일행은 우리네 상설시장쯤 되어 보이는 구루바크 시장이란 곳에 들렀다. 여행 내내 보아오던 바자르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현대식으로 늘어선 상점에는 시계, 옷, 신발, 그릇 등을 팔고 있었다. 나이키 로고가 찍힌 모자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중국 내륙까지 파고든 자본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시장을 들른 후 일행은 거리를 한참 서성여야 했다. 해가 길어서일까, 호탄의 모든 관공서나 상점들이 오후 1시부터 4시경까지 문을 닫기 때문이었다. 4시가 되길 기다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실크로드 박물관이었다.
과거 실크로드 남로의 중심지로 동·서를 연결했던 교통의 요충지 호탄의 모습을 실감케 했다. 1,600년 전의 남·녀 미라를 비롯해 각종 토기와 도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유물의 역사적 가치에 비해 낙후된 시설이었고 보존 상태도 좋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곧 새로운 건물을 얻어 이사할 계획이라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위구르족 일반 가정의 모습
평범한 위구르족이 사는 모습을 보기 위해 시 외곽으로 차를 돌려 나갔다. 마을 입구부터 당나귀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흙으로 다져진 담과 나즈막한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대문에서 집입구까지 포도넝쿨이 늘어져 있는 한 위구르족의 집을 방문했다. 방은 2칸이었으며 앞쪽으로 여러 채소를 재배하며 양과 닭을 사육하고 있었다.
어둑어둑한 방은 마루처럼 되어 있고 카펫이 깔려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의 아이들은 나이에 비해 배우는 학년이 낮았고, 집에서 공부하기엔 먼 거리라 기숙사 있는 학교로 보내진 상태였다.
작은 마을에 소란을 일으키며 환영을 받고 돌아온 일행은 동쪽에 위치한 또 다른 오아시스 도시 민풍을 향해 짐을 꾸렸다. 다시 사막이 시작되었고, 비포장 사막길을 7시간 달렸다. 날리는 먼지와 덜컹거림으로 피곤에 절었지만, 도착한 민풍은 마을이 한 손바닥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도시였다.
사막을 돌아 들어올수록 도시는 점점 작아지고, 길은 점점 험해졌다. 갈수록 사람보다는 자연이 보였고, 사막의 모래는 더욱 고와져갔다. 낯설었던 얼굴이 친근감 있게 다가오면서, 어느덧 여행은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2002. 7 - 대학주보

by Dona | 2007/05/08 00:37 | : : 55리터 백팩 | 트랙백 | 덧글(0)
[중국_카쉬카르] 고도는 아직도 그곳에 빛나고 있다


카쉬가르. 어릴적 보았던 동화에 나온 듯한 신비로운 느낌의 도시.

우루무치가 중국의 여느 도시와 다를바 없는 분위기였다면 신강 서부의 중심지로 자리하고 있는 카스는 더욱 위구르족의 냄새가 나는, 그래서 낯설지만 이국적인 느낌의 도시다. 우루무치에서 침대칸 기차로 꼬박 1박 2일을 달려 도착한 카스는, 뜨거운 태양에 금방이라도 녹아버릴 듯한 아스팔트의 열기로 후끈거렸다. 인민광장에 거대한 모택동 동상이 서 있는 모습과 화려한 빨간색 장식들은 역시 이 곳도 중국이구나하는 느낌을 주었지만, 뚜렷한 이목구비에 서구적으로 생긴 위구르족들이 대부분인 도시는 분명 색다름이었다.

 

바자르 따라 흐르는 활기

바자르. 옛적 명성은 사라지고, 허름하게 웅크리고 있는 카스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곳. 시장을 의미하는 바자르 중에서도 일요일에 열리는 선데이 바자르가 유명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5일장쯤 될까.

비가 추적거리는 일요일 오전, 행여 사람들이 장을 찾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기우에 그치고 말았다. 어디서 그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걸까. 당나귀나 말이 끄는 마차에 처음 보는 각종 과일과 야채를 싣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날씨는 개고, 일직선으로 쭉 뻗은 길을 따라 난전을 펴고, 물건을 사고 팔며, 흥정을 하고 음식을 먹으며 일요일 한 때를 보내는 사람들의 정겹고도 생생한 모습.

흙먼지 날리는 길에는 사람과 당나귀와 말과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택시와 위구르족들을 나르는 낡은 버스들이 엉켜 있다. 무질서나 어지러움 대신, 시끌시끌한 사람들 소리에 찢어질 듯한 클락션 소리마저 정겹고, 뜻을 알 수 없는 호객꾼의 몇마디에도 맞받아 치고 싶어질 정도로 일행은 모두 신이 났다.

먹을거리, 볼거리, 즐거운 거리

바자르에는 난전이 제멋대로 펼쳐져 있지만, 비슷한 것들을 파는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있는 경우가 많다. 과일, 그 중에서도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멜론이나 수박, 하미과류의 과일들은 한데 모아 놓고 팔고 있었다. 천, 수공예 카페트를 모아 놓고 파는 곳은 특히 큰 규모다. 붉은 천막 안에서 천을 파는터라 열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답답했지만, 이슬람틱한 무늬의 천과 다양한 카펫은 사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운 눈요기가 된다.

바자르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먹을거리. 우리네 시장귀퉁이에서 서서 먹는 순대보다 못할 것이 없다. 우리돈 80원이면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든 시원한 차를 마실 수도 있고, 역시 같은 값에 양고기 꼬치구이를 먹어볼 수도 있다. 포장마차처럼 이것저것 먹을 것을 쌓아놓고 손님을 받는 곳도 있고, 국수나 양고기를 파는 꽤 큰 식당도 있다.

양말이나 작은 장식물을 파는 어린이들, 소풍 나온 것처럼 어슬렁거리는 대규모 가족, 당나귀 마차에 누워 잠이 든 청년, 그리고 담배를 말아 피우며 말참견하는 할아버지까지. 꼭 무언가를 사고 팔지 않아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 나온 물건들을 신기한 듯 체험해보며 그렇게 그들은 남녀노소 모두 모여 장을 벌이고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 일요일이 되면, 예전에는 동방에서 온 사람들과 서방에서 온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곳에 나와 일상과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엄숙한 신의 도시

바자르가 활기라면, 같은 도시 안에 경건과 엄숙이 베여있는 곳도 많다. 신강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도 이 곳에 있고(Etigar Mosque), TV에서 황제의 딸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건륭제의 애첩 향비의 묘도 이 도시에 있다. 성지를 향해 끊임없이 절을 하며 신의 축복을 기원하는 위구르족들은 그들의 마음의 고향이라 불리는 이 곳 카스에서 안식을 얻고 돌아간다.

여행객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도시화가 이뤄진 우루무치에서는 느낄 수 없는 위구르족만의 옛스러움이 있고, 지금은 호텔로 쓰이는 옛날 러시아 영사관에서 하룻밤 묵으며 역사 속을 걸어가는 듯한 뿌듯한 느낌을 맛볼 수도 있으며, 카스를 찾는 여행객들이 꼭 들르는 존슨카페의 낭만을 즐겨볼 수도 있다.

이국적인 사람들과 거리, 그리고 다를 수밖에 없는 그들의 문화. 그 안에서 이방인의 느낌을 가장 강하게 받았던 도시. 하지만 쇠락해간다는 느낌보다는 여전히 멋스럽고 찬란한 도시의 이미지를 갖춘 카스. 양고기와 맥주와 노천카페의 소란스러움으로 달래는 카스의 밤은 짧지만 가장 환히 빛나고 있다.

◎ 카스 소개

위구르족에게 마음의 고향으로 여겨지는 곳. 타림분지 서쪽, 파미르고원 북동쪽 기슭에 위치한 오아시스 도시. 동서 문물의 접촉지, 교역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려오던 카스는 오늘날에도 옛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한 채 교통의 요지로 남아, 17개 소수민족의 다양성을 받아내고 있다.

 
- 2002.7. 대학주보

by 비둘기 | 2007/05/06 20:40 | : : 55리터 백팩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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